잠실 김세빈 공인중개사무소
부동산하루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집주인과 세입자
2014.11.04 잠실 김세빈 공인중개사무소
ⓒ연합뉴스 3월11일 전국세입자협회 대표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월세 상한제, 공공 임대주택 확충 등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서울 한 뉴타운 지역 아파트에 거주하는 세입자 정필규씨(가명ㆍ35)는 최근 전세보증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씨는 2년 사이 전세보증금 시세가 1억원 이상 올랐고 집주인도 만기에 맞춰 집을 팔겠다고 해 전세가가 낮은 다른 지역으로의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주인이 매수자가 나타날 때까지 전세보증금을 내줄 수 없다고 통보한 것이다.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새 전셋집을 계약한 정씨는 신용대출 등으로 옮겨갈 집 전세보증금을 마련해야 할 형국에 놓였다. 손해가 막심한 정씨는 어쩔 수 없이 법무사에 따로 돈을 주고 전세금 반환 청구 소송 절차를 밟을 준비를 한다. 렌트푸어의 설움을 겪고 있다는 정씨는 "집주인이 '나도 집이 팔리지도 않고 더 이상 대출 여력이 없어서 보증금을 돌려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하우스푸어다'라고 얘기해 황당하면서도 씁쓸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3월11일 전국세입자협회 대표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ㆍ월세 상한제, 공공 임대주택 확충 등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기형적인 부동산 시장 속에서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 간 전쟁이 치열하다. 지난해 8월 예금 취급 기관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16조965억원. 2011년보다 74조원 늘고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도 36조원이 늘었다(오른쪽 아래 <표> 참조). 이렇게 빚을 내서 집을 사도 매매가는 예전처럼 오르지 않는다. 정부는 연이어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지만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만 들썩일 뿐이다.

하우스푸어들의 투자 손해는 결국 세입자에게 전가됐다. 비싼 집을 사기 위해 대출받은 금액 대부분은 세입자의 임차료로 환원돼,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이 70%를 넘는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 높은 전세가가 그나마 집값을 떠받치고 있으니 하우스푸어라 할지라도 매매 호가를 쉽게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아직 집이 비싸다고 판단해 주택을 구입하지 않는 세입자는 오른 전세보증금을 다시 대출금으로 메운다(오른쪽 위 <표> 참조). 집주인이나 세입자나 양쪽 모두 어마어마한 빚을 안기는 마찬가지, 목구멍이 포도청인 이들은 더 이상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다.

특히 이들의 갈등이 크게 불거질 때는 전세 기한이 만료돼 계약 갱신이나 해지가 이뤄질 시점이다. 전세보증금 증액분에 대해 합의가 되지 않거나, 정씨 사례처럼 보증금 반환 시점에 이견이 발생해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임차보증금 분쟁과 관련한 상담과 대출을 지원하는 서울시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에 2012년 8월부터 접수된 임대차 상담 누적 건수는 8만8944건. 올해만 벌써 3만명으로, 한 달에 3000~4000명에 이르는 세입자나 집주인이 고통을 호소한다.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 서혜진 주임은 "점점 전세가가 오르다 보니 분쟁 대상이 되는 보증금 액수 또한 기하급수로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보증금 3억원 이하의 상담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5억~6억원도 허다하고 10억원짜리 전세 세입자도 상담을 요청해온다"라고 말했다.

이런 갈등은 사실상 정부가 조장했다. 경기도 한 신도시 아파트의 세입자 김수진씨(가명ㆍ39) 역시 정씨처럼 높은 매매가에 집을 내놓고 만기가 되어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하우스푸어' 집주인 때문에 곤란한 형편에 놓였다. 대출이자에 허덕이던 집주인이 애초 시세보다 낮게 집을 내놓았지만 막상 매수 희망자가 나타나자 돌연 마음을 바꿔 호가를 크게 높였다. 그때가 정부가 4ㆍ1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내놓던 시점이었다. 김씨는 "당시 정부 대책이 집주인의 기대 심리를 자극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대책의 효과는 강남 등 일부 지역에만 국한됐을 뿐, 김씨가 세 들어 사는 집은 아직 팔리지 않아서 원하는 시점에 이사를 나가지 못하는 세입자 김씨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주택 매매가 잘 되면 전세가도 안정된다고?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전세 대책은 아직 '매매 활성화를 통한 전세 수요 분산'에 머물러 있다. 전세살이가 고통스러워졌으니 어차피 빚을 지기는 마찬가지, '전세대출' 대신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이참에 집을 사는 게 어떠냐고 무주택자들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세 수요가 줄어들어 전세가는 (하향) 안정되고 매매 수요가 늘어 매매가도 (상향) 안정된다는 논리다. 10월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저금리 대출과 주거 바우처 등을 감안하면 임차인의 부담 수준이 증가했다고 보기 어렵다. 일부 부작용을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거래 활성화를 통해 주택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런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시민단체 등에서는 오히려 세입자들의 고통만 키운다고 비난한다. 10월21일 전국세입자협회ㆍ민생연대ㆍ참여연대 등 22개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주택시장 안정은커녕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며 전세대란을 부추기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 임대주택을 확충하고 전ㆍ월세 상한제, 계약갱신 청구권 등을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주택 가격이 정상화(상승)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라는 정부 논지와 반대로, '주택 가격 하향 안정'만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세종대 행정학과 변창흠 교수는 "집값이 내리지 않고 지금처럼 가처분소득 또한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혹시라도 집값이 오르면 어쩌지' 혹은 '전세가가 지금처럼 치솟으면 어쩌지' 따위 두려움에 의해 집을 사게 하는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라고 말했다.

현재 가처분소득의 증가는커녕, 기존 하우스푸어들의 여력도 점차 떨어지는 형국이다. 금융감독원의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총부채상환비율(DTI) 현황' 자료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의 60% 이상인 수도권 대출자는 지난 5년 사이 6.3배 증가했다. 과거에 세입자는 가난하고 집주인은 부자였다면, 이제는 모두가 비슷하게 가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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