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엔 은행 옆이, 지금은 역세권 주변이 ‘땅값 좌우’
2026.09.12
잠실 김세빈 공인중개사무소
‘1㎡당 3천4만원’ 66배 뛴 백현동 일대 ‘이천 광천지’ 밀어내고 최고가 등극
경기도에서 표준지 공시지가가 가장 높은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현대백화점 판교점 일대. 조주현기자
1996년 이천군 이천읍 안흥리 317-5번지 앞 길목. 새벽 이슬을 머금은 논두렁 옆으로 흙길이 이어졌다. 주변에 낮게 깔린 지붕과 나지막한 상점이 소박한 풍경을 이루고 있던 이곳은 평범한 마을이었지만, 그해 국가가 공식적으로 기록한 장부 위에서 경기도 내 가장 비싼 ‘황금 땅’이었다. 제곱미터(㎡)당 1천500만원. 숫자로 새겨진 가치는 도내 어떤 도심보다 높게 솟았다.
그 이유? 바로 ‘광천지(鑛泉地)’라서다. 사전적 의미로는 ‘지하에서 온수나 약수 등이 용출되는 용출구와 그 유지를 위한 부지’를 뜻한다. 조선시대 세종과 세조도 찾아왔다는 600년 전통의 약수 온천장을 표방하는 특수성이 반영된 영향이다.
이곳을 제외하면 당시 부의 흐름은 돈이 ‘물리적으로’ 모이는 장소로 이끌렸다. 도심 중앙을 지키던 금융 거점들이 곧 지가의 절대 기준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금융의 척추였던 한일은행, 제일은행 수원지점 등 문턱을 오가던 사람들의 둔탁한 구두 소리는 그대로 수원지역 땅값에 반영됐다. 그렇게 팔달구 팔달로(현재 지명) 일대 부지들이 1996년 경기도 최고가 땅 2~5위를 쓸어 담았다.
바다 옆 인천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부평구 부평동 212-69번지, 농협 부평지점이 자리 잡고 사람과 현금이 숨 가쁘게 교차하던 그 자리가 공시지가 1㎡당 1천200만 원으로 인천 땅값의 정점을 찍었고, 중소기업은행이 있던 중구 인현동·내동 일대가 그 뒤를 단단히 받쳤다.
경기도내 최저가권에 속하는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산 일대. 조주현기자
반면 사람의 온기가 닿지 않던 곳의 지적도는 적막하기만 했다. 연천군 장남면 고량포리의 이름 모를 산자락과 포천군 관인면 삼율리·이동면 도평리 등의 빽빽한 풀숲, 인천 옹진군 소청리·백령면 북포리의 거친 해안 절벽. 거친 바람만 스쳐 지나가던 이 순수 산림과 해안 지대들은 단 몇백원(연천 최저 240원, 옹진 최저 150원)에 그치며 지가 장부의 맨 밑바닥을 가만히 지켰다.
그로부터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흘렀다. 전산화 초기 구축된 표준지공시지가 DB는 그 30년간에도 한반도 위에 새겨진 문명을 묵묵히 기록해 왔다. 그리고 현재(2025년 기준), 데이터가 말해주는 지형도는 완벽히 새롭게 그려졌다. 돈의 냄새를 맡고 땅의 가치를 결정짓는 주인공은 더 이상 은행 건물들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모이고 산개하는 철길인 ‘역(驛)’과 거대한 소비의 성전 ‘백화점’이 자리를 대체했다.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541번지. 현대백화점 판교점과 신분당선 판교역이 맞물려 수많은 사람을 삼키고 토해내는 이 첨단 도심은 1996년부터 약 30년간 왕좌를 지켜오던 ‘이천의 그 광천지’를 밀어내고 경기도에서 가장 비싼 땅으로 등극했다. 과거 백현동 541번지라는 지번조차 없었던 무렵, ‘개너머마을’로 불렸던 한적한 농촌은 당시 표준지공시지가 45만원에서 현재 3천4만원까지 몸값을 66배나 부풀렸다.
이 거대한 격변의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은 ‘고집’도 존재한다. 경기도내 가장 비싼 땅이 이천에서 판교로 바뀌는 동안, 인천 부평구 부평동 212-69번지는 예나 지금이나 부동의 ‘최고가’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주변 상권이 변하고 건물 모양새가 바뀌었을지언정 유동인구가 집중되는 공간의 본질적 힘은 세월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30년 전 풀벌레 소리 가득했던 연천과 포천의 산자락, 옹진의 해안가는 여전히 조용히 숨 쉰다. 표준지공시지가 30년의 기록은 단순한 숫자들의 집합이 아닌, 도시 성장을 증명하는 ‘땅값의 자서전’이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밟고 지나가는 길, 집 앞의 작은 골목과 수풀 우거진 논밭에는 저마다의 ‘몸값’이 숨어 있다. 정부가 토지의 가치를 숫자로 기록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30년째다. 1980년대 말까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땅의 가격표를 하나로 묶고, 비로소 1996년부터 디지털 장부로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 ‘표준지공시지가’ 데이터베이스(DB). 그 안에는 경기·인천을 비롯한 전국 땅들이 겪어낸 번영과 정체의 역사가 쓰여 있다. 풀벌레 소리 가득하던 마을이 수도권 중심부로 탈바꿈하기까지 30년치 지가(地價) DB를 통해 오늘날 현장을 읽어봤다. 편집자주
1996년 이천군 이천읍 안흥리 317-5번지 앞 길목. 새벽 이슬을 머금은 논두렁 옆으로 흙길이 이어졌다. 주변에 낮게 깔린 지붕과 나지막한 상점이 소박한 풍경을 이루고 있던 이곳은 평범한 마을이었지만, 그해 국가가 공식적으로 기록한 장부 위에서 경기도 내 가장 비싼 ‘황금 땅’이었다. 제곱미터(㎡)당 1천500만원. 숫자로 새겨진 가치는 도내 어떤 도심보다 높게 솟았다.
그 이유? 바로 ‘광천지(鑛泉地)’라서다. 사전적 의미로는 ‘지하에서 온수나 약수 등이 용출되는 용출구와 그 유지를 위한 부지’를 뜻한다. 조선시대 세종과 세조도 찾아왔다는 600년 전통의 약수 온천장을 표방하는 특수성이 반영된 영향이다.
이곳을 제외하면 당시 부의 흐름은 돈이 ‘물리적으로’ 모이는 장소로 이끌렸다. 도심 중앙을 지키던 금융 거점들이 곧 지가의 절대 기준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금융의 척추였던 한일은행, 제일은행 수원지점 등 문턱을 오가던 사람들의 둔탁한 구두 소리는 그대로 수원지역 땅값에 반영됐다. 그렇게 팔달구 팔달로(현재 지명) 일대 부지들이 1996년 경기도 최고가 땅 2~5위를 쓸어 담았다.
바다 옆 인천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부평구 부평동 212-69번지, 농협 부평지점이 자리 잡고 사람과 현금이 숨 가쁘게 교차하던 그 자리가 공시지가 1㎡당 1천200만 원으로 인천 땅값의 정점을 찍었고, 중소기업은행이 있던 중구 인현동·내동 일대가 그 뒤를 단단히 받쳤다.

반면 사람의 온기가 닿지 않던 곳의 지적도는 적막하기만 했다. 연천군 장남면 고량포리의 이름 모를 산자락과 포천군 관인면 삼율리·이동면 도평리 등의 빽빽한 풀숲, 인천 옹진군 소청리·백령면 북포리의 거친 해안 절벽. 거친 바람만 스쳐 지나가던 이 순수 산림과 해안 지대들은 단 몇백원(연천 최저 240원, 옹진 최저 150원)에 그치며 지가 장부의 맨 밑바닥을 가만히 지켰다.
그로부터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흘렀다. 전산화 초기 구축된 표준지공시지가 DB는 그 30년간에도 한반도 위에 새겨진 문명을 묵묵히 기록해 왔다. 그리고 현재(2025년 기준), 데이터가 말해주는 지형도는 완벽히 새롭게 그려졌다. 돈의 냄새를 맡고 땅의 가치를 결정짓는 주인공은 더 이상 은행 건물들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모이고 산개하는 철길인 ‘역(驛)’과 거대한 소비의 성전 ‘백화점’이 자리를 대체했다.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541번지. 현대백화점 판교점과 신분당선 판교역이 맞물려 수많은 사람을 삼키고 토해내는 이 첨단 도심은 1996년부터 약 30년간 왕좌를 지켜오던 ‘이천의 그 광천지’를 밀어내고 경기도에서 가장 비싼 땅으로 등극했다. 과거 백현동 541번지라는 지번조차 없었던 무렵, ‘개너머마을’로 불렸던 한적한 농촌은 당시 표준지공시지가 45만원에서 현재 3천4만원까지 몸값을 66배나 부풀렸다.
이 거대한 격변의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은 ‘고집’도 존재한다. 경기도내 가장 비싼 땅이 이천에서 판교로 바뀌는 동안, 인천 부평구 부평동 212-69번지는 예나 지금이나 부동의 ‘최고가’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주변 상권이 변하고 건물 모양새가 바뀌었을지언정 유동인구가 집중되는 공간의 본질적 힘은 세월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30년 전 풀벌레 소리 가득했던 연천과 포천의 산자락, 옹진의 해안가는 여전히 조용히 숨 쉰다. 표준지공시지가 30년의 기록은 단순한 숫자들의 집합이 아닌, 도시 성장을 증명하는 ‘땅값의 자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