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장 나쁜 시장 이상한 시장
2026.09.10
잠실 김세빈 공인중개사무소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60577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에게 부동산은 ‘자산 불평등과 가계부채, 청년들의 고통과 소외를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사회의 공정과 상식, 나아가 국민통합을 훼손’한다고도 한다. ‘비생산적 부동산’에 잠긴 자금을 ‘생산적 금융’으로 돌려야 한다고도 말한다. 집 팔아 생긴 돈이라고 해서 다른 곳에 투자하지 않고 깔고 앉아있을 리는 만무하니 부동산에 흘러들어간 자금이 무조건 비생산적이라는 건 과장이다. 부동산에 들어간 자본이 비생산적일 수도 있고 생산적일 수도 있는 것처럼, 자본시장에 들어간 자본도 무조건 좋은 역할만 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학문적으로는 ‘생산적 금융’이라는 용어는 실질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금융이 자본을 생산성 높은 곳으로 배분하는지를 따질 수 있을지언정 어느 부문은 생산적이고 어느 부문은 비생산적이라는 이분법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부동산 시장을 때려잡을게 아니라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금융시장을 개혁할 일이다.
부동산은 나쁘고 주식은 착한가
자본시장도 불평등 낳긴 마찬가지
부동산 나쁘다는 비뚤어진 인식
결과적으로 이상한 시장 만들어
부동산 시장을 미워하는 만큼 자본시장 사랑은 남달랐다. 상법개정 등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일련의 조치들,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과 기업에 대해 각종 비과세·소득공제를 제공하는 조치들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자금을 ‘비생산적이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부동산 시장에서 빼내 ‘생산적 금융’으로 옮기겠다는 큰 기조의 일환이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이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구체적 비난에 비해 자본시장이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부동산에 대한 대통령의 거친 비난이 앞뒤가 맞으려면 자본시장은 불평등을 낳지 않아야 정상일 것이다.
요즘 주식시장 뛰어들었다가 몇천만 원 물렸다는 사람 찾는 건 일도 아니다. 심지어 학교에서 마주치는 20대 학생들조차 몇백만 원 물려서 잠을 못 잔다고들 한다. ‘생산적 금융’인데 왜 그럴까. 최소 몇억은 있어야 간신히 명함을 내미는 부동산과는 달리 서민이나 청년이 소액으로도 뛰어들 수 있는 ‘기회의 공정’이 자본시장의 미덕인 걸까? 그럼 그 결과 입게 된 ‘피해의 공정’도 미덕인 걸까? 기회가 공정하다고 해서 피해도 공정할 거라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투자자의 계층, 즉 학력·소득·자산이 높을수록 주식투자 수익률도 체계적으로 높아진다는 연구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 걸쳐 쌓여있다. 상층에 속하는 사람은 주식시장 참여율 자체가 높고, 운용하는 자금의 규모가 크니 위험을 분산하기 쉽다. 영끌해서 투자하는 사람은 주가가 떨어지면 하루하루가 지옥이지만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는 사람은 기다리면 그만이다. 실현되지 않은 손해는 손해가 아니다. 상층에 속하는 사람은 프라이빗 뱅킹처럼 금융사가 제공하는 고급 자산운용 서비스도 쉽게 누릴 수 있다. 영끌 투자자가 주가하락에 패닉해서 비명을 지르며 사고팔고를 반복할 때, 그들은 금융회사의 노하우가 집약된 수준 높은 정보를 받아보며 느긋하게 기회를 찾는다. 그러니 부동산 시장뿐 아니라 자본시장도 당연히 불평등을 낳는다. 그것도 아주 큰 불평등을 낳는다. 부동산은 몇 년에 한번 거래할 때 차익을 취하고 그중 큰 부분을 양도세로 내지만, 자본시장에서는 매일 수없이 많은 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고 각종 비과세와 공제 덕분에 세금도 적게 낸다. 이재명 정부의 자본시장 육성 정책을 통해 이득을 본 건 서민일까 자산가일까. 이 정책은 불평등을 완화했을까 심화했을까. 레버리지 ETF처럼 조급하게 자본시장을 띄우려다 판을 깨버린 정책실패의 피해는 서민에게 갔을까 자산가에게 갔을까. 부동산이 나쁜 거라면 주식은 착한 걸까.
부동산이 나쁜게 아니다. 문제를 삼으려면 더 효율적인 다른 부문은 외면하고 안전한 부동산 자산에 대해서만 대출해주는 금융의 비효율성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골고루 높여주고 있는지를 따지는 것과, 학생들 중 일부는 애초부터 싹수가 노랗다며 무턱대고 혼내주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마찬가지로 부동산이 비생산적이라며 부동산 가진 사람을 혼내주는 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 이기는 시장 없다’며 거칠게 몰아붙이던 대통령은 지난 한달 새 세제개편안을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이번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책고수가 무조건 옳은 것이냐’고 되레 반문한다. 따지던 사람 말문을 턱 막히게 하는 이 대통령 특유의 화법이다. 문제는 후퇴가 아니다. 국민의 삶을 엄청나게 바꿔놓는 비합리적 정책을 준비도 없이 고집부리면서 추진하다가 하루아침에 ‘아니면 말고’ 해놓고, 반성도 성찰도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시장은 시장일 뿐이다. 어떤 시장은 좋고 어떤 시장은 나쁘다는 비뚤어진 인식은 우리가 지금 보고있는 이상한 시장을 낳았을 뿐이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60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