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붙잡으려면 자부심 가질 환경부터” 오키나와의 실험 [로컬이 다시, 꿈꾸는 나라]
2026.07.20
잠실 김세빈 공인중개사무소
일본 오키나와 남부의 난조시에서는 2028년 개장을 목표로 민관협력 프로젝트 ‘노울(NOLL) 난조’가 추진되고 있다. 대형 창고형 마트 코스트코 인근 부지에 농산물 직판장과 농업인 주거시설, 레지덴셜 호텔을 한데 짓는 사업이다. 겉으로는 관광객을 겨냥한 복합시설 개발처럼 보이지만 실제 목표는 농업인이 떠나지 않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것은 일본 지방창생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이와테현 시와초의 ‘오갈(OGAL) 프로젝트’를 설계한 오카자키 마사노부 오갈주식회사 대표다. 오갈은 행정이 토지와 공공공간을 제공하고 민간이 투자와 운영을 맡는 PPP(Public-Private Partnership·민관협력) 방식으로 도서관과 병원, 시장, 체육시설, 광장 등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어 주민이 머무는 도시를 만든 프로젝트다. 오카자키 대표는 “도시를 살리는 것은 랜드마크가 아니라 사람들이 매일 찾는 생활의 중심”이라고 강조한다. 난조시는 그 모델을 농업도시에 맞게 확장한 첫 사례다.
코스트코 들어서자 농민 살 곳부터 사라졌다
18일 일본 오키나와현 등에 따르면 난조시는 오키나와 남부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도시 중 하나다. 2024년 8월 오키나와현 최초의 코스트코가 들어선 데 이어 고속도로 츠키시로 나들목(IC) 주변에도 대규모 상업시설과 기업 입주가 이어지고 있다.
일자리가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고민도 생겼다. 젊은 층이 농업 대신 상업·서비스업으로 이동하면서 오키나와의 주요 산업인 농업과 축산업을 지탱할 인구 기반이 약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코스트코가 들어선 타마구스쿠 지역은 일본 정부가 지정한 피망 산지이기도 해 난조시와 오키나와현의 우려는 더욱 컸다.
난조시는 해법을 단순한 농업 보조금이 아닌 도시 개발에서 찾았다. 일본 이와테현 시와정의 민관협력 사업인 ‘오갈 프로젝트’를 참고해 오카자키 마사노부 오갈주식회사 대표가 이끄는 컨소시엄을 사업자로 선정했다. 코스트코 인근 시유지 1만3363㎡에 농축수산물 유통과 농업인의 생활을 지원하는 복합 거점을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사업에는 민간이 약 30억 엔(약 275억 원)을 투자하고 난조시도 공공 공간 조성에 5억 엔(약 46억 원)을 투입한다. 민간은 시설을 직접 기획·운영해 수익을 내고 행정은 토지와 공공 공간을 제공하는 민관협력(PPP) 방식이다.

가장 노른자 땅에 농민 위한 거점 조성 나서
노울 난조의 특징은 농산물 판매시설만 짓는 데 그치지 않고 농업인이 지역에 머물 수 있는 생활 기반까지 함께 조성한다는 점이다. 건물 1층에는 오키나와 남부 농산물의 유통 거점인 ‘미나미 오키나와 시장’이 들어선다. 2층에는 농업 종사자를 위한 워커스하우스가, 3·4층에는 지역 식재료를 체험할 수 있는 16실 규모의 레지덴셜 호텔이 배치된다.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능에 주거와 관광을 결합해 생산·정주·소비가 한 공간에서 이어지도록 한 것이다. 관광객이 시장과 호텔에서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면 그 수익이 다시 농업인과 지역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오카자키 대표는 “이제는 일자리만 있다고 사람이 오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농업을 지키려면 농업인이 생활할 수 있는 주거와 생활 인프라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농업에 종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민과 생산자도 시설이 완공된 뒤 입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획 단계부터 운영 방안을 함께 짜고 있다. 난조시 공민연계실은 농업인과 건축가, 디자이너, 시민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열어 시설에 들어갈 콘텐츠와 운영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

마을 주민이 직접 ‘선택과 집중 설계’
지난 2월 열린 ‘노울 난조 심포지엄’에서도 참가자들은 코스트코와 맞닿은 잔디광장과 오키나와 남부 농업의 거점이 될 파머스마켓, 지역 생산자들이 함께 운영하는 시장의 구체적인 모습을 논의했다. 농업인이 단순한 납품업체가 아니라 시장의 운영 주체로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인접한 코스트코를 경쟁 상대로 보지 않고 집객력을 활용하기로 한 것도 특징이다. 코스트코를 찾는 방문객을 노울 난조의 시장과 광장, 호텔로 끌어들여 지역 농산물 소비와 체류형 관광으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오죠 겐유키 난조시장은 “대형 브랜드 체인인 코스트코의 집객력을 활용해 지방정부와 민간이 주민을 위한 관광·생활·소비 거점을 함께 만든다면 금상첨화”라고 말했다.
오카자키 대표는 난조시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꼽았다. 여러 지역에 시설과 예산을 조금씩 나누는 대신 사람들이 매일 찾을 수 있는 생활·소비 거점을 만들어야 농업과 관광, 지역 상권이 함께 살아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노울 난조의 목표는 시설을 한곳에 모으는 데만 있지 않다. 농산물을 팔 공간부터 짓는 대신 농업인이 살 집과 소비자를 끌어들일 호텔, 생산자가 직접 참여하는 시장을 함께 설계했다. 노울 난조의 핵심은 결국 농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인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오갈 프로젝트가 생활 인프라를 집적해 주민이 머무는 도시를 만들었다면, 노울 난조는 그 철학을 농업으로 확장해 생산자와 소비자, 관광객이 함께 순환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려 한다. 급격한 상업 개발 속에서도 지역의 핵심 산업을 지키기 위한 ‘오갈 2.0’ 실험이 오키나와에서 시작되고 있다.